[기초교리,교회사] 축도 성경적인가?


♥ 축도 성경적인가? -1

지난 내용들 못보신분들은 먼저 읽어보시고 본문을 읽으시면 도움이 됩니다.

본 시리즈의 글은 비방하거나 펌하하려는 글이 아니며 성경적인 바른 기준을 말씀드리고자 함이므로, 개인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시는것은 개인 믿음대로 하시고 불필요한 논쟁이나 감정적인 표현은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 두 종류의 교회 = http://theholybible.cf/menu211/46726
♥ 예배형식 차이의 원인 = http://theholybible.cf/menu211/46764
♥ 사도신경 성경적인가? = http://theholybible.cf/menu211/46871
♥ 주기도문 성경적인가? = http://theholybible.cf/menu211/46902
 

♥♥♥ 축도 ♥♥♥

한국 교회에서는 예배의 맨 끝에 예배 의식을 집행하는 목사가 두 손을 들고 성도들을 향해 복을 기원하는 축도를 합니다.

보통 축도는 고린도후서 13 14절을 기초로 해서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한 십자가 대속의 은혜와 성부 하나님의 형언키 어려운 영원무궁하고도 오묘한 구원의 섭리 및 주관하심과 우리 가운데 늘 역사하시어 슬프고 힘들 때 위로하시고 약하여 쓰러질 때 도와 일으키시며 우리의 구원과 행복과 축복의 성취를 위하여 동행하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고 세계만방에 복음을 펼치기 위하여 마음을 모아 계획하고 기도하며 나아가 충성하고자 하는 주님의 모든 종들에게, 진리 안에서 참된 복으로 영원히 있을지어다! 아멘, 아멘!

 
[고후 13:12, KJV] Greet one another with an holy kiss.
[고후 13:12, 킹흠정]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라.
[고후 13:12, 개역]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고후 13:13, KJV] All the saints salute you.
[고후 13:13, 킹흠정]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고후 13:13, 개역]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 13:14, KJV]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and the communion of the Holy Ghost, be with you all. Amen.

[고후 13:14, 킹흠정] []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너희 모두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내는 둘째 서신을 마케도니아의 도시 빌립보에서 써서 디도와 누가 편에 보내다.

[고후 13:14, 개역]  14절 내용을 일부 13절로 옮기고 나머지 삭제


개신교회에서 축도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다 보니 심지어 설교는 듣지 못해도 축도는 꼭 받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축도 역시 로마카톨릭
(천주교회)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회만의 특징이며, 자유교회에서는 처음부터 이런 형태의 기도를 목사가 예배 때에 한 적이 없습니다.

 
축도의 유래 ♥

장로교회의 신학자인 정장복 교수는 축도는 복을 비는 게 아니라 선포하는 행위이며 목회자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축도의 유래와 행위자 그리고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개신교 예배 순서의 끝 부분에는 목사가 교인들을 위해 하나님이 복 내려 주심을 선언하는 강복 선언(降福 宣言-축도)이라는 순서가 있다. 축도의 유래를 보면, 구약시대에 축도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예전에 대한 제반 법규를 준 후 제사장 아론과 그 계열에게만 허락하신 사역이다(6:24-26).
축도는 루터나 칼빈과 같은 개혁가들이 가장 활발히 사용하였으며 지금도 네덜란드의 개혁교회를 비롯하여 많은 유럽의 교회들이 사용하고 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창조물에게 주는 선물’ 이란 의미를 가진 단어를 사용해서 단순한 개인의 바람이나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복이 함께 하는 사실을 알리는 것으로 본다. 실제 예수님은 어린이에게 손을 올려 복을 주시고(10:16) 승천하시기 전에 손을 들어 제자들에게 축복하셨다 (24:50).

사도들에게 이르러서는 축도의 내용을 일반 기도와 달리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으로 구체화하여 사용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는 고후13:14; 15:5-6; 6:23-24; 살전5:23; 살후3:16, 18; 13:20-21 등이다.

교회의 역사에 나타난 기록에 의하면 축도는 사도적 전승을 받은 교회의 감독과 교부들이 사용하였으며 이는 사도적 전통으로 예배의 결론 부분에서 사용되었다.

주후 363년의 라오디게아 회의에서는 이단들의 축도 행위를 엄격히 규제하면서 예배 순서로서의 축도를 존엄한 사건으로 규정하였으며, 후기의 신학자들은 축도를 하나님이 주시는 소중한 은사로 이해하였다.

축도의 자세는 역사적으로 두 형태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두 손을 드는 것과 다른 하나는 십자가를 긋는 것이었다. 중세의 교회를 비롯하여 현재의 구교(천주교)에서는 축도를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사제의 고유한 사역으로 이해하고 강복 선언이라 칭하면서 예배에서 실천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예전의 상징적인 행위보다 말씀 중심의 교회를 강조하였기에 축도를 더욱 소중한 부분으로 간주하였고, 그 정신은 현대의 세계 개혁교회에서 계승되어 목사의 고유한 사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장교수의 주장]


★ 장 교수가 정리해 주었듯이 개신교회의 축도는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축복한 것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천주교 사제의 강복 선언으로 이어졌고 개신교회를 세운 루터, 칼빈 등이 개신교회 안에 이것을 들여왔습니다. 천주교 사제들과 개신교 목회자들만 축도를 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카톨릭(천주교)와 상관없는 자유교회에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축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구원받은 신약성도들은 개개인이 모두 제사장이므로, 카톨릭의 신부나 개신교의 목사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거나 은혜를 또는 축복을 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직접 개인이 직접 하나님과 기도를 통해서 구하고 받을 수 있습니다.

축복의 주체는 하나님이며, 목사가 축도를 해야지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려주시고 목사가 축복하지 않으면 축복을 내려주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개개인의 믿음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한다면 누구나 직접 축복을 구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축복을 부어주십니다. 이 모든것은 성경말씀을 내가 엄중한 주의 명령으로 순종하느냐에 달려있지, 특정 목사의 축도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개신교 축도의 용어 문제

이렇게 구약시대 제사장의 전통을 물려받아 축도를 하다 보니 요즘에는 목사들의 축도 용어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이 많습니다. 특히 축도 끝의 ‘있을지어다’ 에 대해서는 개신교회 안에서도 많은 반발이 있습니다.

현재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축도는 고후13:14의 말씀을 근거로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후속사이며 문안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바울 사도가 보낸 서신마다 기록되었으며 다른 사도들의 편지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있을지어다’ 라는 말은 오직 예수님 자신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인 목사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실수이므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있을지어다’ 로 축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근대적이요, 내면에서는 권위적인 축도 의식이 가득 찬 발상입니다.

현 사회에서는 대통령에게도  ‘각하’ 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계층 간의 간격을 해소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교회가 이 간격을 더 조성하여 목사와 신도들 간의 위화감을 조장하는 발상을 하는 것은 신도들에게  ‘있을지어다’ 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게 할 뿐입니다.

그리고 고후13:14 본문대로 목사가 주문 외우듯 한다면 축복 기도의 참 의미가 없어집니다.
 
여기서 분별하여야 할 것은 고후13:14는 어디까지나 축복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축도문을 목사만 전용한다면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 것 같이 그 본문도 목사의  ‘축도 전용문’ 이므로, 성도들은 성경에서 그것을 빼놓고 읽어야 한다는 이론이나 또는 그 본문을 이용하여 신도 누구나 축도를 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심각한 것은 일부 목사들 (특히 젊은층)의 권위 의식의 문제입니다.
목사의 권위는 제도적인 것에 치중하기보다는 진정 하나님의 소명을 가진 자로서,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희생과 봉사 가운데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권위를 소유할 때 해결이 됩니다.

육신적인 방법이나 계급체계 등과 같은 방법으로 권위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축도를  ‘축원 하옵나이다’ 또는  ‘빕니다’ 로 한다고 해서 목사의 권위가 손상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100년의 한국장로교회의 전통에 이미 토착된 목사의 축도의 말미어는 국문학적으로 손색이 없고 이미 공동번역이나 새 번역에도 사용된  ‘빕니다’ 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빕니다’ 는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간절히 청하는 뜻이라고 국문학적으로 해석된 단어입니다.
또한 청소년과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서  ‘빕니다’ 로 함이 더 좋다고 봅니다.


다음 시간에  ♥ 축도 성경적인가? -2에 대해 계속하겠습니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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